깨침의 소리, “안녕, 자연의 창녕”
한삼윤 (주)창녕신문 자문위원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07월 16일
선지식에 의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둠(無明/미혹,어리석음)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어둠에서 밝음(明/지혜)으로 가는 사람’, ‘밝음에서 어둠으로 가는 사람’, ‘밝음에서 밝음으로 가는 사람’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현재 처한 삶이 아니라 앞으로 지향해 갈 삶이 밝은 것이라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안녕, 자연의 창녕” 미래를 향해 나아갈 창녕군의 ‘도시 브랜드(Brand) 슬로건(Slogan)’이다.
자연의 대명사인 우포늪에서 야성의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따오기의 힘찬 날개 짓을 예상하며 창녕의 더 큰 번영과 행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의미 있는 구호라고 생각한다.
굴곡이 심한 변혁의 시대에, 단순 명쾌한 이 한 줄의 문구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지명(地名)’은 그 지역의 특성과 애환이 담긴 하나의 ‘역사’이자 ‘문화’이다. ‘창녕(昌寧)’이란 지명은 고려시대(940년)이후 사용된 이름으로 그 속뜻을 되새겨 볼 때마다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곤 한다..
창성할 ‘창(昌)’, 편안한 ‘녕(寧)’이다. ‘창성하고 편안한 고장’, 또는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 한다’는 의미를 함축 하고 있다.
‘창(昌)’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해‘일(日)’자 밑에 가로‘왈(曰)’자이다. ‘해와 같은 밝음을 드러내서 ‘성대해진다’는 뜻이다. 사람들의 본성만큼 밝은 곳은 없다고 말한다.
‘밝음’이란 ‘미혹(어둠,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환하게 깨어나다’는 의미다. 천년동안 어두웠던 동굴도 한 줄기 빛으로 밝아진다. 밝음은 지혜이자 희망이다.
밝은 생각, 밝은 말, 밝은 행동을 하면 그렇게 하는 본인이 우선 밝고 행복할 것이고, 듣는 상대 또한 기분이 그만큼 밝아져 더불어 편안하고 행복해질 것이 자명하다.
‘안녕’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안녕’을 내세워 ‘창녕’을 오롯이 품고 있는 ‘자연’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본성과 같다.
그래서 자연의 성품 속에 들어있는 온갖 이치[구중리(具衆理)]를 ‘근본원리’로 하여 만 가지 일을 ‘보편법칙’에 따라 두루 순조롭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다[응만사(應萬事)]
앞으로 도래할 제5차 산업혁명시대는 ‘정신문화’가 주축이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문화’는 사람들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안녕’은 ‘문화의 과정이자 결론’이며 ‘자연’은 ‘문화의 바탕’이다. 특히 자연을 자양분으로 형성된 ‘창녕’은 문화의 실재‘임을 보여준다.
창녕의 3대 특징적인 자원은 ‘자연’, ‘온천’, ‘문화’이다.
‘자연’의 속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근본 뿌리이자 근원적인 생명력으로서, 사람의 본성과 맞닿아 있다.
다양성을 자랑하는 우포늪(천연기념물 524호)과 사시사철 수려한 화왕산을 비롯하여 군젼역의 절반을 휘감아 돌며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낙동강(62㎞)은 창녕의 빼 놓을 수 없는 자연의 걸작들이다.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국민관광지 부곡온천은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또다른 천혜의 자연자원이다.
‘문화’라는 축면에서 본다면 창녕은 일찍부터 ‘경남의 경주’로 일컬어져 왔다. 대내외에 걸쳐 우수한 유무형 문화유산들로 인해 창녕은 전국 군 단위 지자체 중 문화적 영토가 가장 넓은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시대를 ‘글로벌(Global) 시대’ 내지 ‘지구촌 시대’라고 말한다.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한 쪽이 막혀있는 어두운 ‘동굴식 사고’가 아니라, 양 방향이 시원하게 뚫려 있는 밝은 ‘터널식 사고’이다.
바닷물에 뚜껑이 닫힌 채로 물이 가득 찬 물병을 집어넣으면 그 물병 안에 든 물은 외부와의 소통이 되지 않아 얼마간 지나다 보면 썩어버린다. 반면 뚜껑이 열린 물병의 물은 바다(자연성/본성)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바닷물로 거듭 날 수 있다..
“모든 괴로움(苦痛)은 분리(分離)로부터 시작 된다. ‘분리’는 ‘나’와 ‘나 아닌 것’을 분별하는 ‘어리석은 생각(無明)’에서 비롯되며, 이는 뚜껑을 닫아버린 물병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날 떼 태아가 모체로부터 ‘분리’될 때 울음을 터뜨리며, ‘죽음’ 또한 삶에서 ‘분리’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無明)’에서 괴로움이 따른다.
어둠속 깊은 잠에 빠져있는 사람이 꿈속에서 사나운 호랑이를 만나 괴로워하고 있을 때, 주위의 잠들지 않는 사람이 흔들어서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괴로움으로 부터 벗어나는 ‘밝음’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조선시대 최고의 의학서라고 할 수 있는 동의보감의 핵심은 “통즉불통(通卽不痛)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고 말한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이다. ‘닫힘(어둠)’에서 ‘열림(밝음)’으로 가는 소통의 지혜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성현들의 가르침은 한 결 같이 자연의 속성이 사람들의 본성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본성에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은 밝고 맑은 양심(良心 : 仁/義/禮.智)이다.
양심은 내 것 챙기기에 급급한 사사롭고 어두운 욕심의 울타리를 걷어냈을 때 드러나는 지혜의 밝은 마음이다.
어리석은 욕심을 내려놓고 양심과의 소통이 원활해 질 때 사회는 한 결 밝아질 것이다. 자연(본성)의 생명력인 양심이 빛 바래져가는 현실에서, 이를 회복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는 그 날,, 창녕의 미래는 번영과 행복을 구가하며 세세 창창 빛날 것이다. |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07월 16일
- Copyrights ⓒ창녕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경제/사회
칼럼/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