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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창녕신문 |
| 해동지도(1787년 정조11년)에 나타난 창녕현은 경상남도 창녕군의 고암면, 대지면, 대합면, 성산면, 유어면, 이방면, 창녕읍 전체, 고곡리, 칠현리를 포함한 남지읍 북쪽까지다. 읍치는 창녕읍 교상리 일대이며 동쪽은 화왕산 등 산지가 있고 서쪽은 낮은 지대가 이어진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나가는 낙강으로 표기된 낙동강이 있고 위로부터 우산진은 우미나루, 현창진(玄倉津)은 가무창나루로, 울진(蔚津)은 우러리나루로 한자이름을 따서 표기되었다.
영남읍지(嶺南邑誌) (1871년, 奎 12173)에 표기된 진산(鎭山)은 지도 위쪽의 화왕산(火旺山)이다. 화왕은 통일신라시대 창녕의 명칭이다. 즉, 진산명칭을 고을의 이름 딴것이다. 읍치인 창녕 교상리 동쪽은 비슬산, 화왕산, 구룡산, 영취산 등 웅장한 산들이 외곽을 두르고 그 안 쪽은 낮은 산들이 다시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풍수지리적인 국(局)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해동지도(1777~1787(고대4709-41))의 창녕현 대동여지도 17첩 2면에 보면 현풍 왼쪽의 낙동강변에 표기된 개산강 (開山江)명칭은 이 지역에서 부르던 낙동강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창녕 남부지역을 읍치인 영산현은 경상남도 창녕군의 영산면, 장마면, 계성면, 도천면, 길곡면, 부곡면 전체, 아지리를 포함한 남동쪽의 남지읍까지이다. 서남쪽의 낙강 본류와 남강이 합류하여 동쪽으로 빠져나가는데 이곳의 강 이름을 기강(岐江)또는 기음강(岐音江)으로 불렸다. 영산현의 영취산은 서역의 승려 지공이 말하기를 "이 산이 천축(天竺 인도)의 영취산과 모양이 같다고 해서 이렇게 이름을 지은 것이다"라 한다. 주산인 태자산(太子山)은 신라태자의 묘가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영취산의 정상에 북악(北嶽)기우단이 있었고 작약산에 남악(南嶽)기우단이 있어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영취산과 작약산이 영산현의 진산(鎭山)으로 보여 진다.
한편 낙동강은 밀양에서 흘러온 하천(남천강)과 만나는 지점이 삼랑포(三浪浦)이다. 이 지점에서 낙동강의 이름은 다시 황산강이라 불리게 된다. 이곳은 바닷물 영향이 미치는 최상류 지역으로 배의 구조가 달라서 바다로 나아갈 수 없는 강배들은 삼랑진에서 해산물을 받아 상류로 공급하였다. 삼랑진에는 조창(漕倉)있어 밀양, 현풍, 창녕, 영산, 김해, 양산 등 여섯 고을의 전세(田稅)와 대동미를 모아 서울로 보내던 곳으로 낙동강 하류 동래에서 밀양을 거쳐 북상하는 적군을 막을 수 있는 요충지가 있었는데 그곳이 낙사도(落沙島)와 작천(鵲遷)의 황산천(黃山遷)이다. 천(遷)자는‘벼랑길’이라는 의미다. 이곳부터는 낙동강변은 벼랑길로 이어져 있어 적이 이곳을 통해 북상한다면 적은 병력으로도 방어가 쉬운 곳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창녕현과 영산현의 아우르면서 흐르는 낙동강이 개산강, 낙강, 기음강, 황산강 등의 다양한 지역적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 하다.
남중희 (창녕문화원향토사연구부소장)
남중희 약력
1980~92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92~2002 산업지원부, 중기청 서기관 2002~ 성산암데코부사장, 마산대겸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