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無願)과 서원(誓願) -창녕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한삼윤
화왕산 자락, 감리 ‘마애불(磨崖佛)’에 대한 단상(斷想)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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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의 진산(鎭山) 화왕산(해발 757m)은 오랜 옛날부터 내외 우리 군민들이 즐겨 찾는 안락한 휴식처이자 심신을 갈고 닦는 최적의 힐링 명소이다. 산을 찾는 모든 분들은 화왕산을 통해 저마다의 행복을 충전해 간다. 화왕산은 봄 진달래, 여름 녹음방초, 가을 은빛 억새물결, 겨울 설경 등으로 사시사철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다. 특히 신라 8대 명찰로 전해지는 전통사찰 관룡사 등 이름난 사찰들과 화왕산성과 목마산성 등 국난 극복의 유적들을 비롯하여 용선대 고분군등 크고 작은 문화재, 구연삼지(九淵三池)와 창녕조씨득성비 등엔 각종 설화들을 품고 있어 체험 교육과 마음 수행의 산 현장이 되고 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전국에 내놓으라는 산악동호인이라면 예외 없이 한 번 이상씩은 다녀갈 정도이니 한국의 백대 명산 중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화왕산(火旺山)’은 글자 그대로 ‘불기운이 왕성한 산’이다. ‘불(火)’은 ‘깨달음(밝음,지혜)’을 상징한다. 그런 의미에서 화왕산은 ‘깨달음을 머금은 산’이다. 바야흐로 인생 백세시대를 맞아 화왕산이야말로 일상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회복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는 데 가장 적합한 ‘구도처(求道處)’가 아닌가 생각한다.
만법의 근본인 마음을 관찰하는 한 가지 일이 모든 수행을 다 포함한다. 이름 하여 “관심일법 총섭제행(觀心一法 總攝諸行)”을 일깨워 주는 산이다.
필자도 오래 전부터 화왕산을 자주 찾게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마음이 심란한 코로나 시대에는 화왕산이 제격이다. “와사보생(臥死步生)”이라 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속된 말로 “누죽걸산‘이란 뜻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도 된다.
그런데 화왕산 북쪽 기슭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마애불(磨崖佛)’이 자리 잡고 있어 또 하나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창녕감리마애여래입상(경남도유형문화재 제46호)’이다. 이 마애불이 신심 있는 분들의 관심을 받게 되는 이유는 불상 조성 당시 장인의 우수한 예술성 못지않게 부처상의 수인(手印, 손모양)에 숨겨진 예사롭지 않는 의미 때문이라 여겨진다.
고암면 감리 청간마을 입구에서 화왕산 자연휴양림을 겨쳐 약 50여분을 걸어 올라가다 보면 3.3km 지점에 ‘창녕감리마애여래입상(昌寧甘里磨崖如來立像)’안내판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측 계곡을 건너 계속 길을 올라가 약 300m 정도 지점에 이르면 본 마애불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 마애불의 수인 모양을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이라 부른다. 오른 손을 손가락이 펴진 상태로 가지런히 모야 어께 높이까지 올려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한 모양이 ‘시무외인’이고, 왼 손 역시 손가락이 펴진 상태로 아래로 내려 손바닥이 앞을 향하도록 모양을 취한 것이 ‘여원인’이다.
글자 그대로 “모든 두려움을 없애주고, 원하는 바를 성취시켜준다”는 의미다. 이 마애불상의 조성 연대가 통일신라시대 후반임을 감안할 때, 천년을 뛰어넘는 긴 세월 동안 두려움과 근심 걱정에 허덕이는 민초들을 향해 부처님의 깨달음을 전해 주고파 마애불을 조성했던 당시 장인의 깊은 원력이 그대로 남아있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자고로 선지식에 의하면, 모든 두려움과 근심 걱정은 구하는 데서 생긴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구함에는 의미가 없다. 그리고 구한다고 다 구해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구해지지 않을 때 괴로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 만물을 깊이 보면 일체가 구할 것이 없고 바랄 것이 없는 ‘무원(無願)’인 것이다.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해탈(解脫/자유)이다, 구한다는 것은 낚시 줄을 물고 있는 고기에다 비유한다. 구하다보면 구애받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으니 ‘무원’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원’이 바로 마음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이다. 두려움은 구하는 것이 관철되지 않을 까 걱정하는 데서 온다. 두려움을 없애주는 근본적인 처방은 구함(바라는 것)을 내려놓는 ‘무원’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오른 손은 지혜를 상징하는 ‘무원’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왼손은 ‘서원(誓願/與願)’을 가르친다. 구하는 바가 없는 데 왠 서원이냐고 말 할 수도 있고, 무원과 서원이 충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선지식의 가르침이다. 구할 바가 없다는 깨달음을 무지한 민초들에게 알려줘서 자비와 사랑의 마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서원(여원)’이다. ‘무원(無願)’이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도록 닦는 개인적인 ‘정행(淨行)의 마음수행(지혜)’이라면, ‘서원(誓願)’은 다른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닦는 발고여락(拔苦與樂/괴로움을 없애고 즐거움을 준다)의 ‘원행(願行)의 마음수행(자비)’이다. 부처님의 일관된 깨달음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하나의 마애불에서 화왕산을 더욱 자주 찾을 명분을 얻으니 행복이 저절로 찾아온다. 누구나 행복하면 웃지만 웃어서도 행복해지니 매일 매일이 즐겁다. |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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