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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은 `화려했던 비화가야` 였다!˝ 빼박 증거 등장
남지읍 구진산성,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져
가야시대 토목 기술과 5세기 비화가야 토기편 출토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2년 0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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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은 23일, 그동안 조선 시대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진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구진 산성을 발굴조사 한 결과, 비화가야시대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졌다.
구진산성 발굴조사는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비지정 가야유적 조사연구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구진산성은 낙동강 동안에 우뚝 솟아있는 구진산(해발 308m) 정상부를 감싸는 테뫼식 산성(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산성)이다. 산성의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9개의 진을 펼쳐 왜군을 물리쳤다고 해 붙여진 것으로, 조선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이번 발굴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로 토제(土堤)를 활용한 가야시대 토목기술이 확인됐고, 성벽 내부에서는 5세기대 비화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돼 창녕 비화가야 세력에 의해 축조된 성벽인 것이 밝혀졌다.
구진산성은 지리적으로 낙동강 동안에 위치하고 있어 삼국시대 방어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더불어 비화가야의 종합적인 복원을 위해 생산유적, 성곽유적 등 여러 문화유산들을 조사하고 있다.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선 창녕군은 2009년 11월 12일 오후 2시, 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고대사 속의 창녕’이란 주제로 열린 고대사 정립을 위한 제1회 학술회의에서 경북대 주보돈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에 창녕은 비화가야(불사국)으로 기록되어 있다”며 “신라에 복속된 4C말 이전 시기의 창녕지역은 비화가야라는 독립국가가 존재했었음을 증명해준다”고 못을 박은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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