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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문화원장 한삼윤- 세상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눈길에 닿을 때 비로소 현실이 됩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이 현상을 '관측'이라 부릅니다. 입자는 가능성의 파동 속에 흩어져 있다가, 관측되는 순간 하나의 현실로 수렴합니다. 관측은 단순한 인식을 넘어, 세계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호명(呼名)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불리기 전의 존재는 무명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꽃은 비로소 ‘꽃’이 되고, 사람은 진정한 ‘사람’이 됩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詩)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처럼 호명은 존재를 관계 속으로 이끌어내고, 그에게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관측과 호명은 서로 다른 말이지만, 하나의 진실을 가리킵니다. 존재는 홀로 완전한 실체가 아닙니다. 관계와 사건을 통해 비로소 현실성을 획득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누구를 불러들이냐에 따라 세계는 달리 열리고, 존재는 달리 빛납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화초도 물 한 컵을 주며 “참 잘 자랐구나” 하고 말을 건넬 때, 비로소 그 싱그러움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던가요? 무심히 던진 시선 앞에서 아이는 움츠러들지만, 따뜻한 눈길과 부름 앞에서 용기를 냅니다.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이에게 미소와 함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평범했던 만남은 작은 축제가 됩니다.
세상은 매 순간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 눈으로 저를 바라보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제 이름을 불러 주십니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사랑으로 관측하고, 정성으로 호명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매일 행하는 가장 은밀하면서도 위대한 창조입니다. 오늘 하루, 단 한 사람, 한 사물이라도 그렇게 바라보고 불러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환히 빛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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