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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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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상파 방송사에서 PD로 일하며 문화 인물을 조명하는데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생생하게 기억나는 분들만 해도 윤이상, 이원수, 박경리, 김종영, 최윤덕, 조성국, 김아타 선생을 비롯해 대략 열 분쯤은 된다.
그 중에도 특별한 인연을 꼽으라면 윤이상, 이원수, 박경리 선생이다. 올해 2025년은 윤이상 타계3주기 특집방송 ‘통영이여 나의 조국이여’ 제작을 계기로 윤이상 선생과 인연을 맺고 이어온 지 햇수로 27년이며, ‘고향의 봄 창작 동요제’를 기획 연출하며 시작된 이원수 선생과의 인연은 28년이다. 또 [토지] 완간 10주년 특별 대담 ‘작가 박경리’의 방송제작과 고향 방문 프로젝트 종합 기획 진행을 맡았던 박경리 선생과의 인연은 21년이 되었다.
누구도 이런 인물들의 업적과 가치를 조명하고 기리는 일을 하라고 강요한 적도 없고 애초부터 나 자신도 이 일을 꼭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이 일이 운명처럼 나를 찾아왔고 그저 큰 실수 없이 일을 해내야겠다는 일념으로 묵묵히 일을 해낸 것 같다.
내가 만약 음악인으로 활동하고 있었더라면 윤이상을, 아동문학인이었더라면 이원수를, 미술인이었더라면 김종영을, 소설가였더라면 박경리를 선양해 온 일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해줄까? 모르긴 해도 응원하기보다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분들이 많지 않았을까 넘겨짚어 본다.
클래식 음악에 전문성이 부족했던 내가, 박경리 선생의 가치를 충분히 알지 못했던 내가, 아동문학에 크게 관심 없던 내가, 현대예술에 무심했던 내가 윤이상을, 박경리를, 이원수를, 김종영을 방송으로 그 업적을 조명하고 선양사업에 간여했다는 것은 쉽게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씌여서’ 한 것 같고 그분들의 보이지 않는 예지력과 염력으로 나를 불러 일을 시킨 것 같은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내가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일이나 국내외 여러 문화 인물 선양사업을 지켜보면서 깨달았던 것은, 문화사업은 물과 같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발원은 미미해도 흘러가는 과정에서 다른 작은 흐름을 껴안고 수용해서 마침내 거대한 강이 되는가 하면 시작은 장대했어도 다른 물줄기를 수용 못 해 흐름이 중단되거나 동력을 상실한 채 결국 고갈의 길로 드는 사례를 숱하게 보았다. 그래서 여건이 좋으면 흐름에 맡기고 막힘이 있으면 에둘러 가거나 좀 더 역량을 키워서 넘어가려 했으며 아무거나 수용하면 본성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결코 억지로 서두르지는 않았다. 여러 인물 관련 문화사업을 해오면서 배운 결론은 ‘내가 일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때 생각했는데 세상이 바뀐 게 아니라 내가 바뀌었더라’이다.
올해는 윤이상 선생 타계 30주기의 해이며, 내년 2026년은 이원수 선생이 지은 민족 동요 <고향의 봄> 창작 100주년이자 박경리 선생 타계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를 맞는다. 이분들과 오래 인연의 끈을 이어온 나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아닌 내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선양해 온 일을 빌미로 이분들의 격조 높은 예술과 철학, 삶을 얘기한다는 것은 외람될 뿐만 아니라 상식적으로 큰 결례인 줄 안다. 다만 이분들의 업적을 방송이나 문화사업을 통해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선양하는 일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그 과정에 겪고 얻은 체험과 지혜를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는 일이 이 분들의 가치 중 지극히 한 부분이라도 이해하거나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양사업의 여정에 대한 기록이 문화사업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책으로 엮기로 하였다.
이 책에 실린 글은 세 분 선생의 연구서도 기념 사업의 종합적 역사서도 아니며, 내용은 윤이상과 이원수 선생 관련해서는 필자가 적극적으로 실무를 수행했던 시기, 박경리 선생은 돌아가실 무렵까지로 한정했다. 또 가능한 한 사실 기록에 집착했지만, 극히 일부 개인적 주관적 입장이 투영된 부분도 있겠다고 보고 이에 대해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묵묵히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 그리고 세 분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해 헌신해 오고 있는 각계의 동지들에게 지면으로나마 그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김일태 金一泰(시인, 방송인, 연출가)
1957년 경남 창녕 출생이며 경남대를 졸업했다.
방송인으로서 1983년 입사 2015년 정년퇴직한 MBC경남에서 PD 기획부장 방송사업국장 전략기획실장 등을 지냈으며, 작곡가 윤이상, 아동문학가 이원수, 작가 박경리, 조각가 김종영, 작가 김아타 등 여러 문화 인물을 집중 조명하였다. 그리고 특히 '통영국제음악제'의 초기 기획과 실무, '고향의 봄 기념사업 실무를 주도했으며, 'TV 특별대담, 작가 박경리', '박경리 선생 고향 방문 프로젝트'를 총괄 기획 진행하였다. 이 외에도 '창녕낙동강유채축제', '창원세계아동문학축전', '창원 환경영화제' 등을 기획하여 산파 역할을 하였다.
문화예술계 활동으로는 1998년 《시와시학》 등단, 『부처 고기』, 『파미르를 베고 누워』 등 9권의 시집과 시선집 『주름의 힘』을 펴냈으며, 연출가로서 창작 가무악극 '백월이 중천하여', 뮤지컬 <고향의 봄>, 창작무용극 '오동나무에 걸린 새벽달', 국악창무극 '수로여 대가락이여', 칸타타 '고향의 봄' 등 여러 공연 작품의 대본을 집필 또는 연출하였다. 경남문인협회장, 창원예총회장, 창원문인협회장 등을 역임 하였고, 이원수탄생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 김종영탄생100주년기념사업공동추진위원장, 방정환세계학술대회공동조직위원장, 2023·2024 진해군항제 총감독, 그리고 경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현재는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CEO), (사)고향의봄기념사업회 회장 겸 이원수문학관 관장, 고향의봄창작10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장, 창원세계아동문학축전 운영위원장, 경남문협 창원 예총 고문을 맡고 있다. E-mail: kimit77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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