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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배미령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01일
< 비평과 연구의 장을 여는 수필미학 신인상 수상 2022 봄 >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는 오후다. 열다섯 살 아이가 집으로 오는 길은 평화롭게 보인다. 하굣길에 친구들과 재잘거리다 깔깔 웃기도 하며 장미꽃보다 화사한 모습으로 들어온다.
대문 앞에서 마주친 딸아이는 엄마를 발견한 순간 입가에 미소가 가득 넘친다. 현관 앞에 벗어 둔 얼룩진 운동화가 눈에 띈다. 옆구리 터진 운동화를 바라보는 나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내가 저 아이의 나이쯤 되었을 때 찢어진 운동화 때문에 입었던 마음의 상처가 새록새록 새 순 돋듯 돋아난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 6남매 중 둘째인 나는 늘 외로웠다. 공부 잘하는 언니와 동생들 틈새에 내가 사랑받을 공간은 없었다. 나의 중학교 시절은 교복도 학용품도 모두 언니의 것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새것을 사 달라고 떼 한번 써 보지도 않았다.
어느 해 여름 소낙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던 날, 어머니 등에 기대어 한없이 울었다. 몸이 약한 나는 언니가 물려 준 교복이 남의 옷을 입은 허수아비 같아서 친구들에게 부끄러웠다. 운동화는 너무 많이 낡아 비가 오는 날이면 황토흙물이 양말에까지 물들여져 신발 벗기가 부끄러웠다. 그날따라 비를 맞은 나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었다.
‘예쁜 딸 오늘 운동화가 빗물에 젖어 속이 많이 상했겠다.“
어머니의 고운 음성이 귓가에 닿자 나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나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어머니의 말은 울음을 그치게 하는 보약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검은색 비닐봉지에서 하얀 운동화 한 켤레를 꺼내어 내 앞에 내 밀었다. 그리고는 부엌으로 나가셨다. 그동안 낡은 운동화를 보며 사 주지 못한 어머니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비가 억수같이 내리자 어머니는 둘째의 낡은 운동화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 모아 둔 돈을 쥐고 5리 길을 마다 않고 시장으로 달려가 운동화를 사 오신 것이다. 나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니에게 너무도 미안한 마음 때문이었다. 조금만 참았으면 어머니 마음을 덜 아프게 했을 텐데... 하지만 기쁜 마음도 함께했다. 새 운동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눈물을 닦고 나는 새 운동화를 신고 끈을 불끈 매었다. 내일은 제일 먼저 학교로 달려가 하얀 운동화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몰래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그날 부엌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물 탕 끓이는 냄새가 동네 골목길로 퍼져 나갔다.

지금 행복해 보이는 내 아이는 옆구리 터진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의 운동화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못난 엄마가 되고 말았다. 내 자식에게는 결코 낡은 운동화를 신기고 싶지 않았었다. 제일 예쁜 옷을 입히고 싶었고, 제일 비싼 신발을 신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만 먹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아침 일찍 일을 나가면 아이들의 저녁밥도 겨우 챙겨주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보통사람으로 평범한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먹고 사는 것은 팍팍하다. 치솟는 물가에 내 집 마련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사회의 정서도 메마르다.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면서 청소년들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명랑하고 말썽 없이 예쁘게 커 가는 딸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공부도 그런대로 잘하는 편이다. 아이로 인해 스승의 날이 되면 학교 일일 교사의 경험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글짓기 대회에서 늘 상장을 받아왔고 상품권을 상품으로 받아왔다. 그래서 참고서는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되었다. 아이 때문에 사는 게 행복이고 사랑일 때가 더 많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외롭게 하지는 않았을까? 너무도 미안하다. 아이를 향해 ‘사랑한다. 고맙다. 애썼다. 오늘 힘 들었지’ 라고 넉넉한 칭찬 한번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오늘은 중학교 시절 낡은 운동화가 빗물에 젖어 친구들에게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머니 앞에서 서럽게 울었던 울음이 아니라, 딸아이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운다.

늦었지만 나의 어머니가 나에게 그랬듯이 아이를 불렀다. 엄마와 운동화 사러 가자했다. 아이는 웃음 지으며 말한다. “아직은 괜찮아요.”
하지만 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신발가게로 갔다. 오늘은 정말 비싼 운동화를 사 주고 싶었다. 아이는 애써 메이커 붙은 운동화를 사지 않으려 한다. 딸의 생각을 존중하며 평범한 하얀 운동화를 샀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아이의 모습에서 중학교 시절의 나를 발견한다.
가슴에 뜨거운 온기가 채워진다. 이제 너를 향해 더 게으르지 않고 따뜻한 위로 같은 칭찬을 많이 해주는 엄마가 될게. 딸을 향한 내 마음은 청자 빛 보다 더 푸르고 쪽빛보다 더 진한 빛으로 아이의 가슴에 물들게 하리라. 봄바람도 박수를 보내며 벚꽃 잎을 날려 발자국마다 음표를 만든다.
아이와 이렇게 마주보고 웃는 날이 더 많아 지기를 하늘을 우러러 구름 위에 새긴다.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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