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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편조, 아버지 신원경을 만나다(2)

* 편조와 아버지 신원경의 임종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01일
ⓒ 인터넷창녕신문


“그런데 대감께서 나를 보더니 불문곡직하고 아이를 절로 데려가 중으로 키워달라고 사정하더구나. 초당은 바로 네 할아버지 되시는 분이지.”
“그러니까 편조 조부님께서 스승님께 부탁하ㅤㅅㅣㅆ네예. 부친이 아니고요?”
옆에 있던 벽계가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렇지. 그때 네 부친이 되는 젊은 초재 신원경은 개경으로 볼일이 있어 장기간 출타하고 없었지. 초당께서 말씀하기를 관상쟁이로 이름난 감재처사가 얼마 전에 왔다가 아이의 관상을 보고 대 흉상이라면서 절에 의탁시켜 중으로 만들지 않으면 도적놈 괴수가 되던지 관직에 나가면 역적으로 몰려 장차 멸문지화를 삼족이 당할 것이라 했다지 뭔가.”
“…….”
“곧바로 박 집사를 따라 영산으로 가거라.”
“예…….”
편조는 너무나 큰 충격으로 일미사를 나선 후부터 입을 꾹 다물고 눈길을 걷기만 하고 있었다. 청룡암에서 신패를 주던 그때 그 어르신이 아버지라니! 그럼 그때 신돈이라 이름을 지어주던 청룡암 송허 선사는 진짜 그의 할아버지뻘 되고……. 그런 인연으로 이루어졌단 말인가? 그는 뒤늦은 후회와 원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니 부모가 자식을 절에 버린 그런 경우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날 이후 찾지도 않고 인연을 끊은 사람이 과연 부모란 말인가?
“절에서 도령님을 돌보던 박소새가 바로 소인의 딸입니더, 도령님 모친은 해산 후 산후조리를 잘못해 돌아가셨습니더. 절에 의탁하면서 대감께서 유모였던 우리 딸도 따라가 도령님을 돌보게 했는기라요.”
편조는 집사 박출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기가 막혀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옆에 아무도 없으면 통한으로 가슴을 치면서 길가에 주저앉아 통곡하고 싶었다.
― 어머니가 날 낳자마자 돌아가시고 절에서 날 돌보던 분이 나의 유모였다니!
초재 신원경은 영산 신씨 세가의 자손으로 <영산군지>에 의하면 고려 때 음사(蔭仕)로 조회의 의례(儀禮)를 맡아보던 관청인 합문(閤門)의 정7품 관리인 지후(祗候)가 되어 고향을 떠나 개경에 올라가 벼슬을 살았다. 지후 벼슬은 요즈음 대통령실 의전 비서관과 같은 관직이었다.
그러다 어머니를 봉양하고 아들들을 가르치기 위해 낙향하였는데 그 결과 자손들이 높은 벼슬도 하고 명성이 높아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며 귀하게 된 이가 많았다고 한다. 사후에 좌정승 영산부호군 양절(亮節)이란 시호를 받았다.
편조는 말이 없이 걷고만 있었으나 집사 박출은 주절주절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간의 일을 알아들으라는 쪼로 그가 듣든 말든 말했다.
“형제가 4분이지예. 맏이 되시는 분이 예(裔), 둘째 도련님이 부(富), 셋째 도련님이 순(珣), 막내 도련님은 귀(貴)라 합니더. 큰 도련님과 스님 도령님과는 나이가 비슷합니더. 아마 동갑일낍니더.”
박 집사는 신원경의 장남 예와 편조가 동갑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편조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기록(영산신씨 족보)에 의하면 신예가 충혜왕 4년(1342) 18세 때 원 제과 급제하였다고 하니 햇수를 역산하여 보면 그가 출생한 해가 1325년이 된다. 고려에 먼저 문과 급제 했을 때 나이가 18세이고 그 4, 5년 이후 원나라로 간 것으로 보면 신예의 생년은 1320~1년으로 볼 수 있다. 4형제가 다 총명하여 관직에 올랐는데 편조도 이복형제들과 다름없이 총명하고 학문에 밝았을 것이다.
“사실 대감께서 옥천사나 관룡사에 매년 시주를 많이 하신 것도 도령님을 위해서였지예. 해마다 시주를 제가 가져 갔습니더. 혹시 저를 보신 적이 있을껍니더?”
박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절에 온 중늙은이가 어머니 박소새를 만나 뭔가 친밀하게 얘기를 나누는 광경을 몇 번이나 목도(目睹)한 일이 있었다. 그때 그는 그저 어쩌다가 안면 있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줄 알았지 부녀간에 만나 회포를 푸는 줄은 까맣게 몰랐다.
영산 서불 마을 신원경 대감의 저택 소슬 대문에 들어서자 집안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그중 나이 지긋한 하인이 두 사람의 어깨에 앉은 눈을 털어주며 말했다.
“얼른 사랑방으로 가 보이소. 대감과 마님, 도련님 두 분이 기다리고 있습니더. 대감은 가물가물합니더.”
집사 박출은 편조를 안내해 초재가 있는 사랑방으로 데려갔다. 방에 들어서니 병자는 누워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부인 임씨와 신순 신귀 둘이 지키고 있었다. 편조는 급하게 아버지 병상에 다가가 꿇어앉았다. 박출이 병자가 알아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어르신! 신돈 도령님이 오ㅤㅅㅣㅆ습니더.”
박출의 말에 초재가 힘겹게 눈을 뜨고 승복을 입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편조를 바라보는 눈은 회한과 그리움이 가득했다. 한참 만에 초재가 입을 열었다.
“내가 네 애비다. 청룡암에서 먼났던 늬 애비다.”
편조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돌아가신 네 조부님께서 관상쟁이의 말을 듣고 널 옥천사 진묵 대사께 맡긴 후 내가 몇 번이나 너를 도로 집으로 데려오려고 했다. 그런데 번번이 조부님 엄명에 못 이겨 그러지 못했지.”
신원경은 말하기에 힘이 부치는지 숨을 몰아쉬었다. 대신 부인 임씨가 입을 열었다. 편조는 부인 임씨를 얼른 보아 성깔이 있고 당차고 고집이 센 여인네 같았다.
“네 어미는 너를 낳다가 그만 죽어뿌ㅤㄹㅣㅆ다. 늬 어미는 서불 근처 봉오재가 고향이제. 소실로 우리 집으로 들어온 것이제.”
“아! 예……”
“늬 어미 성이 김가다. 마침 소새가 소박을 맞아 시가에서 쫓겨왔는데 젖을 먹여 너를 키우게 했제.”
신원경은 일찍이 절에 의탁한 아들 편조 신돈이 오자 마음이 편해졌는지 조용히 눈을 감더니 숨을 거두었다. 편조가 아버지 임종을 지킨 것이었다.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입력 : 2022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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