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문화원장 한삼윤-
‘무유정법(無有定法)’이란 글자 그대로 모든 것은 고정되게 실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현상의 법칙이다.
몇해 전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과 여행을 같이 가기로 약속했는데 갑작스런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일정을 포기하고 후회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이 갔던 친구들끼리 다툼이 생겨, 같이 동행치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옛날 중국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기르던 애마가 국경을 넘어 달아났는데 크게 낙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안돼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나타나 한 없이 좋아했다. 이후 그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절름발이가 돼 또 다시 크게 낙담했다. 하지만 그 뒤 변방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많은 장정들이 차출되어 사망했지만 그 아들은 목숨을 구했다. 이름 하여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다.
삶에는 흔히 정답이 없다고들 말한다. 이는 무상(無常), 무아(無我)의 이치를 잘 드러내 준다.
무상이란 시간적으로 항상함이 없이 변한다는 말이고, 무아란 공간적으로 그 어떤 존재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무상과 무아의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는 것이 무유정법이다.
몸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를 겪고, 마음은 생겨나 머물고 변화하며 사라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을 반복하며, 우주는 생성되고 유지되며 파괴되어 결국에는 소멸로 이어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겪으며 순환한다.
이처럼 모든 것은 변화하며 영원히 고정된 것은 없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변화한다는 이치, 즉 변화의 법칙만이 변하지 않는다.
삶은 불확실하지만 죽음은 확실하다는 말은 이러한 변화의 법칙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다양한 삶의 역설(逆說)이 발생하는 이유도 무유정법이란 개념이 바탕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질적으로 풍요해졌지만 정신적인 빈곤을 겪고 있다는 풍요속의 빈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것을 모른다는 깨달음의 역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많은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계의 역설, 선택지가 많을수록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선택의 역설, 행복을 추구할수록 행복에서 더 멀어진다는 행복의 역설이 있으며, 골프에서 힘을 뺄수록 비거리가 늘고 힘이 강해진다는 힘의 역설도 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지를 신(神)께 물었다고 한다.
신의 대답이 걸작이다.
돈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시 돈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버리는 우도 종종 범한다.
현재를 놓치면 과거도 미래도 무의미해 지는 것이 진리다.
고정되게 정해진 바가 없다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의 진리,
이게 우리 삶에서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