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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왕산 메아리 82) 논설주간 윤수근
독립운동가 이회영(李會榮)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0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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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5천년 역사에서 936회의 외침을 당하고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은 국난극복의 위기에서 조국에 헌신한 민족지도자와 민초들이뿌린 피와 땀의 결정체일 것이다. 유비무한(有備無患)의 정신과 국력이 쇠퇴하여 자주성을 잃으면 주변 열강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것은 역사의 증명이다. 우리의 말과 글, 주권을 잃은 한 맺힌 일제 36년, 이회영(李會榮 1867.3.17~1932.11.17)선생은 왕조시대 봉건주의 타파에서부터 항일투쟁까지 전 재산과 가족, 명문가의 명예까지 모두 대한독립에 바쳤던 대표적인 자주 독립운동가 이다. 세계사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높은 신분에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가문이 전 재산을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용하다 정작 본인들은 굶어 죽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다. 9대가 정승 판서 참판을 지내고, 5번의 좌우 정승과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 선생의 후손으로 조선 말 10대 부자 가문의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은 전형적인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를 실천하였으며 금수저의 기득권을 버리고 지배층으로서 그에 걸맞은 사회적, 도덕적 책무를 실현한 민족지도자요 혁명·사상가이다. 노비의 인격을 존중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가계비를 지원하며 해방시키고 남편 잃은 여동생을 재가(再嫁)시킨 것은 신분타파의 혁신적 모범이었다.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방(韓日合邦)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가 되자, 우당 선생과 그의 6형제들은 나라의 국운과 진로에 대해 상의를 하였다. 이 모임에서 그들은 만장일치로 전 재산을 정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쓰기로 결심하고 50여명의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전념하던 중 선생의 6형제 중 5형제가 비참하게 순국하였다. 당시 소 1만 3천두, 토지 포함 600억원(실제가치 2조에 해당)전 재산을 헌납하여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이곳에서 8년간 3,500명의 위대한 독립운동가들을 양성하였다.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1920년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에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그들을 중심으로 여러 항일 비밀 결사대가 결성되어 일본의 주요시설 폭파와 주요 인물들을 암살하는 한편, 광복군 등으로 활약하여 일본군과 일제경찰의 간담을 얼어붙게 하였다. 또한 선생이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갈 때 그곳의 뱃사공에게 거금을 미리 주며 ‘앞으로 이 강은 역사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조선의 수많은 청년들이 뜻을 품고 이 강을 건널 때 도와 달라’고 당부했다. 1918년, 이회영 선생과 그의 형제들은 신흥무관학교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며 운영비 고갈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고 하루에 죽 한 끼조차 먹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우당 선생의 부인 이은숙 여사는 남편의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바느질 하느라 성한 손가락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선생은 1932년 66세에 밀고자에 의해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광복을 보지 못하고 모진 고문 끝에 옥중 순국하였다. ‘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를 더 이상 고통스럽게 하지 말고 빨리 죽여 달라 죽어서라도 조선의 독립을 보리라’는 자주독립의 불타는 의지와 신념은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별이었다. 당시에 매국노 친일파도 있었지만 국가와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투쟁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따로 없었다. 이회영 일가의 애국심과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받친 숭고하고 거룩한 희생을 잊을 수가 없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선생은 전 가족의 목숨과 재산을 항일독립운동에 바친 민족의 귀감이다. ‘친일 후손은 흥하고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망한다.’ 는 역설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도록 애국·애족의 가치를 정립할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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