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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창녕신문 |
|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하략) 할아버지를 머나 먼 곳으로 떠나보낸 뒤, 슬픈 마음을 억누르고 방송에 출연한 정동원 군이 애절하게 불러 더욱 유명해진 ‘희망가’는 일제강점기시절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래 준 대표적 국민가요이다. 지상파 방송 유일의 가요 프로그램인 ‘가요무대’에서도 광복절이 돼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잊어져 가던 오래된 노래를 미스터트롯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다시 듣게 되어 반가웠다. 이 노래뿐이 아니다. 70-80년 전에 히트한 ‘선창’과 ‘나그네 설움’에서부터 최근에 발표된 가요까지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로 목요일 밤을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가무를 즐기고 흥을 아는 쾌활한 민족이다. 추수를 끝내고 천지신명과 조상신에게 감사의 제사를 지내고 흥겹게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는 제천행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가 그렇고 신라의 ‘향가’나 고려가요 ‘정과정’이나 ‘가시리’가 그렇다.
우리 전통가요는 암울했던 일제식민지 치하에서도 피폐하고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고, 6.25 피난길에서도 불러졌으며 총탄이 난무하는 월남전선과 열사의 나라 사우디, 리비아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불렀다. ‘번지 없는 주막’, ‘고향무정’, ‘울고 넘는 박달재‘, ‘삼팔선의 봄’, ‘전선야곡’,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미워도 다시 한 번’, ‘월남의 달밤’ 등이 그런 노래가 아닐까 생각된다. 곡을 만든 박시춘, 박춘석, 길옥윤 등은 가고 없지만 노래는 남아 남인수와 고복수, 황금심, 이미자, 배호, 남진, 나훈아, 조미미의 음성으로 레코딩 되어 전해지고 지금은 젊은 가수들이 대신 열창하고 있다. 당시 그들의 인기는 지금의 K팝 가수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회화나무 그늘아래 모여 앉은 동네처녀들이 홀치기를 할 때 항상 끼고 있었던 게 건전지를 칭칭 감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였으며 밭 매는 농촌 총각의 시름을 달래 주던 것도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구성진 노랫가락이었다.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언제부터인가 팝송과 포크송 열풍이 불면서 전통가요는 뽕짝으로 치부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별 밤 지기라는 DJ들이 나타나 여고생들의 애간장을 태웠고 비틀즈, 스모키, 아바, 이글스, 나나무스쿠리 같은 외국 가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음악다방에서 노래하던 트윈 플리오와 양희은 같은 통기타 가수들이 브라운관에 얼굴을 보이면서부터 트로트의 전성기는 지구레코드사의 퇴진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유행은 돌고 돈다고 했던가, 거짓말같이 복고풍이 다시불어 중년층뿐만 아니라 앳된 소녀들까지 히어로 임영웅과 막걸리 한잔의 영탁 그리고 진또배기 찬원이와 ‘고맙소 고맙소 널 사랑하오’의 김호중 그리고 장민호의 ‘남자는 말합니다.’를 청해 들으며 음악신동 정동원군의 성장하는 모습까지 지켜보게 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바깥출입을 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답답하고 우울하게 보내야 하는 국민들에게 그들의 노래는 힘이 되어 주었고 큰 위안이 되고도 남았다. 때맞춰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이 편성되어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팝송을 부르고 샹송을 흉내 내야 폼 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우리 정서에 맞는 우리노래를 사랑하고 부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새벽안개 춤을 추고 새들이 노래하는 잊지 못할 우포에서 뛰어놀던 그 추억들 화왕산 바라보며 키워 온 꿈들 (중략) 백년도 못 사는 우리 인생 잊지 못할 창녕 우포야 같이 가자 창녕 우포야
제가 노랫말을 직접 쓴 고향노래 ‘내 사랑 우포’의 일부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