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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창녕신문 |
| 2019. 2. 26. 경남 창녕군 계성면 계성리·사리·명리 일원 창녕 계성 고분군 (昌寧 桂城 古墳群)261기를 포함한 232,840㎡(7만평)에 이르는 고분군의 사적 제547호로 지정이 되었다. 이로써 창녕지역의 고대사를 밝혀 줄 가야연맹체를 규명하는 서막이 열렸다. 창녕지역의 고대사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독특한 양식의 금동투조관모, 금동신발, 금제귀고리, 환두대도 등 왕의 무덤을 무덤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유물들이 존재하고 있고, 최근 계성 고분에서 발굴된 금동관 편, 금제 귀걸이, 은제 허리띠 등의 장신구류와 말띠드리개 및 발걸이(등자) 말안장 꾸미개 등 마구류와 철제대도 등 무구류 등은 가야의 왕 또는 최고지배자의 무덤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 무덤들은 5세기의 비화가야 시대부터 신라권에 편입이 되었던 7세기까지 걸쳐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출토되는 토기 류는 가야 방식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는 토기 제조기술에 신라의 토기제작의 양식이 접목이 되면서 등장한 창녕식 토기의 전형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창녕 퇴천리 가마터가 발굴되면서 비화가야의 실체와 부상 그리고 주변과의 교류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창녕 계성 고분군 제3호분 발굴조사(2013~2015) 창녕 계성 고분군은 영취산 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부에 조성된 대규모 고분군이다. 동쪽으로는 영취산 병봉이 둘러싸고 있고 서북쪽으로는 계성천이 따라가면 낙동강과 이어지는 요충지의 능선 여러 갈래에 261기의 봉분이 분포하고 있는데 정상부에는 지름 30m가 넘는 대형무덤이 5기가 있다.
1967년 5호분, 1968년 1호분· 4호분, 2013년~2015년 2호분?3호분, 2017년 156호분, 2018년 2~3~5호분 등 5차례에 걸쳐 발굴 조사한 결과 수혈식석곽 상부는 나무로 덮개를 만든 특징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유개고배와 장경호, 통형기대 등 창녕양식 토기 류가 대량 발굴되었다.
특히 2호분은 봉토직경 36.4m, 잔존높이 7.5m로 매장 주체부는 주곽과 부곽으로 구분된 목곽구조이다. 목곽은 전체 길이 980㎝, 폭 310㎝, 깊이 350㎝로 경주 황남대총을 제외하면 국내 최대 규모다.
계성 2호분의 잔존 규모가 7.5m로 매우 깊어 절반만 발굴했는데도 토기와 철기, 장신구 등이 다량으로 발굴됐다. 철기는 대도, 철모 등이며 은제 허리띠 장식 등이 다수 출토됐다.
5세기에 축조된 수혈식석곽인 대형 고총 고분과 6~7세기에 축조된 횡구식석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무덤의 축조 양식의 변화는 고분군의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이동하며 나타나며, 창녕 지역에서의 가야의 성립, 발전과 쇠퇴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의 고분에서 출토된 수준 높은 유물과 함께 창녕지역의 고대사의 비밀을 밝혀줄 열쇠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남중희 (창녕문화원향토사연구부소장)
약력 1980~92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92~2002 산업지원부, 중기청 서기관 2002~ 성산암데코부사장,마산대겸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