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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억
김영일(수필가)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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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창녕신문 |
| 찔레향이 코끝을 찌르는 늦은 봄, 구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를 모시고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19 때문에 미수연(米壽宴)을 열어드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가까운 곳이라도 자주 나들이하여 기분 전환을 해드리고 싶어 우리 형제들은 각자 짬을 내 바람 쐴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열정을 다해 가꾼 월상초등학교가 눈에 선하다고 하셔서 의령 가는 길에 그 학교와 6.25 격전지 박진나루도 볼 겸해서 영산과 장마를 지나는 코스를 선택했다. 지금은 여느 농어촌학교처럼 학생 수가 부족해 폐교가 된 월상초등학교는 전쟁기념관으로 변모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손수 심은 측백나무 울타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철재 담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 한복판에는 낡은 탱크 한대가 떡하니 자리 잡고 서있다.
6.25 당시, 창녕전투는 다부동 전투와 더불어 피의 격전지 중 하나였다. 북한의 도발로 시작된 동족상쟁(同族相爭)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고 내려오는 적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개전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한 달 뒤에는 낙동강 유역까지 위협받아 삼천리금수강산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 뻔하였다. 8월 초에는 창녕도 안심할 곳이 못되어 피난길에 올랐다. 아버지는 2-3일치 미숫가루와 여벌의 옷가지만 챙겨 감골재를 넘어 밀양 청도로 피난하였다. 두 달여 동안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폭격과 기근(饑饉)으로 몇 차례의 위험한 고비를 겨우 넘기고 귀가하니, 살림살이는 모두 잿더미가 되었다고 한다. 하두학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절망을 딛고 전쟁복구에 나서고 학업증진에 최선을 다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선생님이 되어 평생 교단을 지킬 수 있었다고 하신다.
북한군의 침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故 이병필 창녕중학교 교장선생님과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이란 구호를 외치며 학도병에 지원한 정연태 님의 임전무퇴(臨戰無退) 정신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전시실 안으로 들어갔다. 부상을 당해 숨져가면서도 총을 놓지 않은 호국영웅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의 메모장과 만년필 등 유품과 희망의 끈이 되어 주었을 구겨진 가족사진을 볼 때는 숙연해지기도 했다.
발발 한 달 만에 낙동강 동부지역을 제외한 국토의 대부분이 적의 손아귀에 넘어가 부산 함락이 초 일기에 들어갔다. 만약 그때 낙동강을 수호하지 못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다. 국군과 U.N.군은 부산을 지키고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선 낙동강 방어선을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 남지 박진나루와 유어 적포나루는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하는 관문이다. 따라서 도강(渡江)하려는 북한군과 이를 저지하려는 아군 사이에 한 치의 양보를 불허하는 처절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보름에 걸친 혈전 끝에 아군이 승리해 전세를 뒤집고 낙동강 교두보를 확보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게 했다.
올해로 개전 70주년이 된다. 장구한 세월이었지만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다만 휴전상태에 있을 뿐이다. 강산이 일곱 번 바뀌는 동안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변했다. “누구의 판단이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 사고로 단정할 수 없다. 특히, 요즘 같은 다원화 사회에서는 O, X 문제를 풀듯 답을 고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humanism)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충혼탑으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하얀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나라를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護國英靈)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명복(冥福)을 빈다. |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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