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화두, ‘주인 된 삶’
창녕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智光 韓三潤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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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위세가 좀처럼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장기화 되고 있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래서 요즘 흔히 듣는 얘기는 ‘어렵다’는 것이고, 특히 사람들의 화제는 그 어려움에 따른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을 자신보다 바깥에서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끔 가수 나훈아를 비롯한 유명 가수들의 얼굴과 음성을 판박이처럼 닮은 모창가수들이 노래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때마다 느끼는 것은 재능과 수준면에서는 기성가수 못지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도 몸값은 기성가수에 비해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유는 기성가수는 자기 노래를 부르지만 모창가수는 기성가수만을 따라 부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창가수들이 가진 한계 일 수밖에 없다. 자기 목소리,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는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여겨진다.
사람들이 힘들 때도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외부 조건에 핑계를 대기가 일쑤이다. 정치하는 사람들 때문에 힘이 든다. 돈 때문에 일자리 때문에 힘이 들고, 아내 때문에 힘들다. 부모 때문에 못살겠다. 자식 때문에 못살겠다. 사업 때문에 힘이 든다. 코로나 때문에 등등 여러 인생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보지 않고 외부 대상(경계)에다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말하자면 외부 조건이나 대상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고, 자기 자신은 거기에 의지해서 속박되어 살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핑계를 댄다는 것은 자기 뜻대로 원하는 대로 일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누구를 탓하기에도 어려울 만큼 일이 안 풀릴 때는 전생타령, 사주팔자타령, 나아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라며 신을 탓하는 일도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자기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못하고 바깥 대상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리며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인 된 삶’이란 ‘~때문에의 삶’이 아닌 ‘~불구하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사는 내가 원한다고 다 내 뜻대로 될 수도 없고,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것이 좋은 일이란 보장도 없다. 그래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생겨났다.
한 명만을 뽑는 대기업 시험에, 5명의 응시자가 지원했을 경우, 원하는 대로 합격되는 인원수는 단 한 명뿐, 나머지 4명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그런데 불합격했다고 꼭 괴로워하며 살아야 할까!
누구나 원하는 것은 다 있다. 그러나 원하는 것은 이뤄질 수도 있고 안 이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할 수도 있는 것 이다. 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내 문제지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 문제이다. 그런데 내가 너를 좋아하니까 너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독선적인 발상일 뿐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네가 감히 나를 안 좋아 할 수가 있는가? 이런 방식이다.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나중에 결과를 봐야 안다. 그런데도 우리는 뭐가 좋은 지 나쁜지도 모르면서 우선은 자기 뜻대로 되는 게 좋은 줄로만 안다.
가상의 예로, 쥐가 선반위에 놓여있는 보기 좋은 떡을 발견해서 그걸 먹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을 경우, 쥐의 입장에서는 우선 그걸 먹고 쉽겠지만 그 떡 속에 쥐약이 들어있었다면, 그걸 이미 알고 있는 하나님 입장에선 쥐가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문제는 현실 상황이 변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이 괴롭고 고달픈 것은 외부 상황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잘못 돼서 그렇다.
나에게 닥쳐온 상황은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일 자체가 본래부터 좋은 일 안 좋은 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대상을 ‘공(空)’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부정적으로 볼 것인가는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다.
우산장사 짚신장사 아들을 둔 여인이 연중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근심 걱정에 사로잡혔다. 날씨가 맑은 날엔 우산장사 아들이 장사가 안 돼 걱정이고, 비가 오는 날엔 짚신장사 아들이 장사가 안 돼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를 지켜본 사람이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한 생각을 바꿔보라는 것이다. 맑은 날엔 짚신장사 아들이 장사가 잘 돼 좋고 비 오는 날엔 우산장사 아들이 장사가 잘 돼 좋다는 것이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그 어떤 일이라도 100% 좋고, 100% 안 좋은 일은 없다. 부정과 긍정이 혼재하는 상황 속에서 긍정의 요소에 마음을 머물게 하는 것. 이게 ‘주인으로 사는 길’이 아니겠는가! 지은 인연을 돌이켜보면 괴로울 일이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 닥쳐온 ‘코로나’는 우리들스스로가 불러들인 또 다른 인연일 수 있다. 그래서 남 탓, 세상 탓 하는 것은 자기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또 다른 이기심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붓다께선 이렇게 말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간혹 바다에서 자유자재로 윈드서핑을 하는 상황을 떠 올려 보게 된다. 아무리 높은 파도가 밀려와도 능숙한 솜씨로 파도타기를 즐기는 모습에서 삶을 살아가는 주인 정신을 일깨우게 된다.
‘지속 가능한 행복’, ‘완전한 행복’을 누리려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하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찍이 임제 선사는 이를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몸을 위해서는 밥도 먹고 몸도 씻으며 옷도 바꿔 입고 수시로 휴식도 취하지만 마음에는 관심도 없이 홀대하기 십상이다. 행복한 것은 몸뚱이가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에도 맛있는 것을 먹여야 한다. 그게 ‘마음의 양식’이고 ‘수행(修行)’이다. ‘과거 탓’, ‘남 탓’이라는 그 ‘탓’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인생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면서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코로나시대의 화두는 언제 어디서나 ‘일체유심(一切唯心)’임을 잊지 않고 ‘주인 된 삶’을 살아가는 일이 될 것이다. |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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