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와 왜(倭) 야마대국
남중희(창녕문화원향토사연구부소장)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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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규슈지역과 긴키지역에서 말 재갈, 말에게 씌운 갑옷 등 무덤 주인공이 기마민족임을 나타내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에가미 교수는 1967년에 ‘기마민족국가’ 저서를 통해 일본인의 기원으로 기마민족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가야 고분의 발굴성과가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대성동 고분에서 파형 동기와 갑옷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파형동기는 일본의 규슈와 긴키 지방에서 흔하게 출토되는 것으로 이 유물들은 근세까지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것과 유사한 파형동기가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대거 출토되었는데 이는 일본에서 출토된 것보다 1백 50여 년이나 앞선 것이다. 갑옷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출토된 것과 흡사한 모양이지만 제작 연대가 앞선 것이 가야의 유적에서 나왔다.
가락국 제2대 거등왕 때 왜(倭) 야마대국 히미코라는 여왕의 기록이 나온다. 삼국사기에도 왜왕 히미코가 174년 사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지위지동이전에도 ‘이 나라는 본래 남자를 왕으로 삼아 왔으나 60~70년이 지난 후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몇 해 동안 서로 공격하여 싸워왔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여자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지위지 왜인 전에는 히미코는 서기 179년에 야마대국의 여왕에 올라 69년간 왕의 자리에 있었으며 무녀(巫女)로서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는데 그녀의 곁에는 항상 남동생이 있어 국사(國事)를 보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일본 구마모토현 야쓰시로 신사에서는 묘견궁(妙見宮)이라는 곳에 묘견(妙見)공주를 모시고 있다. 이 신궁은 천무 시절인 795년 세워졌다. 야쓰시로 신사 정문 처마 끝에는 몸은 거북, 머리는 뱀의 형상인 구사와(龜蛇瓦)인 현무가 있다. 지붕 꼭대기는 용의 형상에다 몸체는 물고기로 된 쌍어(雙魚) 문양이 뚜렷이 있다. 즉 황대 신궁에는 묘견공주를 천황가의 조상으로 모시고 있으며, 이를 아마테라스오호가미(天照大神: 천황가 조상신)라고 칭한다. 야마대국의 여왕이 된 묘견(妙見)공주를 일명 일본어로는 묘켄공주 또는 히미코(卑彌呼 비미호)로 불리며 일본서기에는 신공왕후, 삼국유사에는 세오녀(細烏女), 고사기에는 난생녀(卵生女)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묘견공주가 수로왕의 둘째 공주로 추정이 된다는 기록은 김해김씨왕세계(金海金氏王世系)의 신녀(神女)에 대한 기록인데 수로왕의 장남 거등왕 때 선견(仙見)이라는 왕자가 신녀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떠났다.(王子諱仙見 興神女乘雲離去) 여기에서 ‘승운이거(乘雲離去)’란 이들이 구름을 타고 떠났는지 아니면 배를 타고 안개 낀 바닷길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가락국을 떠난 것만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히미코(卑彌呼)와 파형동기 한편 묘견공주가 어디로 부턴가 배를 타고 야쓰시로에 당도했는데, 그 해로(海路)가 아마쿠사제도의 묘견포였다고 한다. 이에 야쓰시로 현지 주민들은 매년 11월 22일부터 이틀간 거행되는 묘견제(祭)를 규슈지역의 3대 마쓰리(축제)로 삼을 만큼 묘견에 대한 숭배심을 나타내고 있다. ‘마쓰리’란 한국말로 ‘맞으리’라는 말이다. 즉 ‘맞이하여 들이는’ 축제이다. 마쓰리 때는 묘견의 야쓰시로 당도를 재현해 커다랗게 만든 거북배(구사 龜蛇)를 어깨에 메고 시가 행진을 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줄다리기 등 민속행사를 벌이기도 한다. 또한 규슈 남쪽 미야자키현에 자리 잡은 쿠지후루다케(龜旨峯 1574m)와 근방의 가라쿠니다케(韓國岳 1700m)는 그 명칭만으로도 가야와 직접적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는 산이다. 쿠지후루다케는 김수로왕 강림 장소인 김해의 구지봉(龜旨峯)과 똑같은 말이고, 가라쿠니는 「가락국」의 일본발음인데 특이하게 가라(韓國)로 표현하고 있다.
묘견이 가락국의 신녀인지 확실치 않지만 야쓰시로시를 흐르는 구마천가에 세워진 하동도래비(河童渡來碑)에는 ‘지금으로부터 일천수백년전 삼천여명의 하동(河童가야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바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축제를 베풀었다. 이 축제에는 오늘날까지 ‘오레오레..라이타이다’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는 경상도 사투리로 오래오래 되었다는 말이다. 하동은 야쓰시로 사람들이 가라파라고 불렀다. 원래는 가라배(加羅輩)로 ‘가야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비는 가야사람들이 이곳에 온 지 오래되었다는 것으로 삼천명이나 되는 가야세력이 그곳에 도착하였다는 것은 당시 일본 고대사의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야마대국은 가야가 세운 고대국가임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본다. |
창녕신문 기자 / cnilbo@hanmail.net  입력 : 2021년 06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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