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건너가는 존재’ -창녕문화원향토사연구소장/창녕신문자문위원 智光 한삼윤-
삶의 목적을 묻는다면 누구나 ‘행복’이란 단어를 떠 올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성 싶다. 문제는 행복을 안에서 찾지 않고 밖에서 찾는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행복은 추구하거나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누리는 것이다.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다.
옛 성현들이 세상을 보는 안목은 한 결 같이 ‘괴로움’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삶을 ‘고(苦)’라고 했고, 공자님은 ‘난(難)’이라 했으며, 예수님은 ‘고난(苦難)’으로 파악했다는데 공감이 간다.
삶을 부분적으로 보면 희로애락, 즉 즐거움과 괴로움의 반복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봐선 괴롭다는 것이다. 삶을 ‘괴로움의 바다’, ‘고해(苦海)’라고 말하는 이유다. 이런 괴로움의 사슬에서 벗어나 즐거움으로 가는 것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이며 ‘행복을 누리는 삶’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라고 말했다. 삶의 과정 과정이 행복으로 건너가는 하나의 꾸준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반야심경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다. 부처님의 깨달음의 큰 지혜로 괴롭고 힘든 고통의 세상에서 안락하고 평화로운 극락정토로 건너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을 누리는 과정이 수행(修行)이다. 가는 데마다 본래 자리, 이르는 데마다 출발지, ‘행행본처(行行本處)’이고, ‘지지발처(至至發處)’다. 안에서 살피면 행복이고 만족이다.
괴로움은 집착(執着) 때문에 오는 것이다. 집착을 놓고 인연 따라 사는 삶이 바른 길(中道)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닦는 수행이 필요하다. ‘심위법본(心爲法本)’, 마음이 모든 존재의 근본이다. 한 생각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반 컵의 물을 두고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이나 남았다’며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다. 바깥으로 잡착 하는 마음을 안으로 거두어 들이는 게 참수행이다.
일본에서는 검도(劍道)와 다도(茶道) 등에서 ‘수파리(守破離)’ 수행이 일상화 되고 있다고 한다. 지키고(守), 깨뜨리며(破), 떠난다(離)는 뜻이다. 처음에는 전수 받은 대로 모방해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이를 깨뜨려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어, 종국에는 떠난다는 이치다. 건너가는 일은 우리를 창의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유롭게 만드는 지혜로운 몸짓이다. 건너가는 일은 자기를 믿어야만 가능하다. 스스로 오직 만족할 줄 아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이 행복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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